설립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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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해석 정해영 선생 장학문화재단

청년의 내일을 위한 일이며, 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알차고 근실한 인재 양성에 주력하겠습니다.

설립자 정재문의 부친 해석 정해영 선생은 정계와 재계를 아우르는 우리 현대사의 거목입니다.

그의 출중한 경세, 탁월한 혜안, 넉넉한 인품은 사업가에서 정통야당인으로 서의 삶의 자취에 일관하고 있습니다. 또한 불의(不義) 부정에는 당당히 맞서 싸우신 정치인으로 그 평가도 대단히 높았습니다. 선생은 울산 진장 출신으로 부산상고를 졸업하신 후 사업에 진출하시어 약관의 나이에 대동연탄을 창업하신 후 천재적 사업수완으로 부산 최고의 납세자가 되셨고 석탄왕이라는 칭호를 얻으셨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당시 혼탁한 자유당 정권의 문제점을 시정코져 3대 민의원에 출마, 정계에 입문하시어 해박한 경제지식으로 조세문제 등 많은 개혁을 이끌어 내셨고 또한 수없이 시련을 겪기도 하셨습니다.

공화당 정권하에서는 야당 원내총무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시면서 협상과 타협으로 정치를 이끄신 분으로 3대에서 10대까지 최다 7선의원을 역임하시다 80년 정변으로 의원직은 물론 모든 재산을 강제 헌납 당하셨습니다. 선생은 정계뿐만 아니라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고 또 이분들을 넉넉히 거두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어린시절 고향의 선배 '외솔 최현배 선생'으로부터 민족의 역사와 글을 배우고 일제하에 극일을 깨우쳤습니다. 외솔 선생으로부터는 특히 인재를 키워야 나라가 산다고 하신 가르침을 받은 해석 선생은 고향마을 앞으로 흐르는 시냇물 동천의 이름을 따서 마침내 사재를 털어 동천장학회를 설립하시고 서울 성북동에 동천학사를 세우셔서 500여명에 이르는 많은 인재를 양성하셨습니다.
그중 공직자로는 두분의 내무장관, 대법관, 법무장관, 정무장관, 재정경제부차관, 그 외 차관보 국장 등과 울산시장 민선 초대에서 3대까지, 울산출신 국회의원, 학계 대학원장, 학장, 재계 등 각계 각층에서 나라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천학사는 6ㆍ25 전쟁이 끝난 후 1955년부터 1980년까지 배움의 보금자리로 전국 대학생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융성히 커갔습니다만 우리 동천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80년 정변에 휩싸여 선생께서 고초를 당하시고 설상가상으로 그 터전을 잃고 말았습니다. 모질고 험한 정치적 격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맥이 끊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곡과 굴절의 역사는 엄청난 재산의 강탈은 물론이고 그의 한 시대의 중단과 침묵을 강요하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사반세기 동안 '동천의 시대'가 펼쳐진 이후, 이제 또다시 사반세기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굴절의 한 시대가 마감되고 21세기의 새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무한경쟁 지식 정보화 시대를 맞아 선생의 교육입국과 인재양성의 숭고한 정신과 의지는 더욱 새롭고 다양하게 펼쳐져야 할 것입니다. 바로 '해석 정해영 선생 장학회'는 끊어졌던 '동천'의 맥을 새로 잇는 것이며, 여기에는 불의와 부정에 항거하여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살아온 선생의 신념과 의지가 고스란히 담기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장학회는 다양한 분야에서 자질있는 많은 이에게 참여의 기회를 부여하고 나아가 그들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입니다. 또한 선생의 정신과 업적을 연구하고 모아서 정리하고 동시대의 귀감으로써 많은 이들이 본을 받도록 하는 여러 사업도 함께 펼쳐 나갈 것입니다.